딩씨 마을의 꿈

   




  어떤 문장으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책을 읽는 내내, 읽을수록 나는 책에 더 빠져들었고 모든 것이 부서지고 책에서 내가 튕겨져 나왔을 때의 충격에 온 몸이 전율한다. 나는 이 책 앞에 완전히 무력하게 쓰러져버렸다. 끓어오르는 마음에 몸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진다. 책이 이렇게까지 사람 마음에 들어와버릴 수 있는가? 책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텅 비어버리게 할 수 있는가? 책이 손을 뻗어 내 심장을 움켜쥐고는 몸뚱어리만 밖으로 던져버린 듯하다. 


  천 페이지 속에서 무수한 죽음을 마주하며 생존을 향한 발악과 삶을 체념하는 마음과 잠시 소생하다 사라지는 희망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연해진 마음을 보았다. 그 모든 마음은 적어도 한 번씩은 내 머리를 뎅 울리고 갔다. 덕분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카오스 속에서 기존의 윤리와 도덕은 무너져갔다. 또한 도덕을 무너뜨리는 것에 앞장서고, 이를 정당화하는 인물도 있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움켜쥐기도 했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도 했다. 가장 머릿속을 맴돈 생각거리는 딩량과 링링의 사랑이었다. 링링은 딩량의 사촌동생의 아내로, 둘의 사랑은 명백한 불륜이자 윤리의 파괴다. 그러나 열병에 걸린 두 사람은 서로를 깊이 연민하였다. 서로를 깊이 연민하며 뿌리가 죽은 나무와 같던 삶의 이유를 찾았고, 서로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며 버림받은 그네들의 삶을 보듬었다. 사랑의 형태가 너무 처절하고 숭고해서 나는 차마 그들을 비판할 수 없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라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딩씨 마을의 꿈>에서 가장 인상깊은 대목은 남편 딩량의 열을 내리기 위에 자신의 몸에 찬 물을 끼얹고 딩량을 껴안는 것을 밤새 반복하다가 찬물 때문에 열이 나서 링링이 죽은 대목과, 책의 말미에 딩수이양 할아버지가 자신의 아들 딩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집집마다 알리고 다니는데 딩씨 마을은 이미 텅 비어버려 그 소식을 들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대목이었다. 밤새 제 몸에 찬 물을 끼얹고서는 고운 옷을 입고 누워 죽음을 맞이한 링링의 모습을 그려보며 피에타 상을 떠올렸다. 소식을 들어줄 이가 없는 휑한 마을에서 황량함과 아득한 공허를 느꼈다. 내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작가의 말마저 완벽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며 단순히 시간과 감정만 소모한 것이 아니었다. 정말 몸과 마음을 모두 소모해가며, 생명의 일부를 떼어 이 책을 읽는 데 썼다. 과연 작가도 자신의 생명을 소진해가며 <딩씨 마을의 꿈>을 썼고, 탈고했다고 언급했다. 


  지금까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재앙에 직면한 상황을 다룬 소설을 세 편정도 읽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자들의 도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그리고 옌롄커의 <딩씨 마을의 꿈>. 나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재앙 앞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눈 먼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극한 상황에 내몰린 인간의 추악함에 몸서리쳤다. <페스트>를 읽으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내는 인간의 모습에서 숭고함을 느꼈다. <딩씨 마을의 꿈>을 읽으면서는 아주 많은 감정을 느꼈다. 한 마디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무수한 감정을 느꼈다. 딩씨 마을의 흥망을 10년동안 지켜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 굴곡진 감정의 삶을 잠시 살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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