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에서 D-Day까지, 그리고 시험 후기
매일 올린다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보니 또 이렇게 되었다ㅎㅎ 그렇지만 마지막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거의 매일 공부하는 시간과 그날의 일과는 사진으로 기록해뒀다. 시험이 끝난 지 벌써 하루가 지난 오늘, 내가 10일을 치열하게 보냈는지 스스로 평가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겠다.
10월 16일
이날 생각보다 한 게 없다. 일물연 수업 시간 전에 일물연 문제를 풀고, 미적 smp를 듣기 전에 미적 과제를 하고 운동을 한 게 다이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분명 쉬지 않고 뭔가를 계속했다는 사실 하나로 많은 것을 해냈다고 착각하는 날. 그럴 때 내가 정말 뭔가를 했는지, 또는 뭔가를 질질 끌었는지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일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재는 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 내에 내가 어떤 일을 했는가를 체크하는 것이다. 오늘은 후자에 가까운 날인가보다. 충분히 치열하지 못한 오늘은 빨간색 X를 그을 수 없다.
10월 19일
오늘은 지정한 양을 다 끝내진 못했지만 나름대로 불태웠다. 왜냐하면 발등에 불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다음날이 물리 퀴즈라 최소한 물리 4주차와 5주차를 복습해야했기 때문이다. 여러 기초 과목 중 물리가 수업 관리도 그렇고 조교 시간도 그렇고 엄격한데, 그만큼 사람을 공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1학기 때 학생의 자율에 모든 것을 맡긴 미적분학의 결과는...나에게는 처참했다ㅋㅋㅋㅋ) 지난주를 마지막으로 일반 화학 실험이 끝났기 때문에 오후 시간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반강제적으로라도 불태운 오늘은 빨간색 X!
10월 21일
어제 물리 퀴즈를 끝내고 넉다운됐던 것 같다. 오늘은 퀴즈 범위에 들어가지 않아 복습을 하지 않았던 물리 1주차 과제를 복습했다. 공부가 참 신기한 게, 뭐든 당시에 배울 땐 너무 어려운데 좀 더 공부를 많이 한 후에 다시 돌아와서 보면 쉽게 쉽게 풀린다. 그러니까 처음 배우는 느낌은 이게 전체 그림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퍼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퍼즐 조각을 들고 낑낑거리는 것 같고, 다시 돌아와서 보는 느낌은 전체 그림을 충분히 보고난 후에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산도 그렇고, 공부도 그렇고 일단 높이 올라봐야 내가 걸어올라온 계단의 진가를 볼 수 있구나.
10월 23일
어제 시험기간이 3~4일 남은 상태에서 화학 시험이 기말고사 기간으로 미뤄졌고, 대체과제가 나간다는 공지를 받았다.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결과이고, 시험 기간이 임박한 상태에서 공지를 한 것이 무책임하게 느껴지지만 늘 그렇듯 학교라는 시스템에서 학생은 '받아들이기'를 강요당하는 입장이기에 빠르게 시험 전략을 수정했다. 물리에 물렸다고 써놓긴 했는데, 사실 오늘은 미적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 1학기 때는 미적분 수업과 숙제의 수준 차이가 나에겐 꽤 크게 느껴져서 따라가기 힘들었고 곧 흥미를 잃어버렸는데, 2학기 수업은 교수님의 강의와 직결되는 문제들이 숙제 문제로 나와서 나름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다. 모르는 건 조교님께 열심히 물어보고 있는데, 내가 질문이 너무 많아서인지 줌 회의에서 거의 1대1 과외를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과목 1순위가 수학이었는데, 요즘에는 수학의 엄밀함과 치밀한 논리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뭐랄까, 빈틈없는 모자이크로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새삼스럽다.
10월 24일
오늘은 진짜 물리에 물린 날이다. 중의적인 말이다. 물려서 그만하고 싶을 만큼 하기도 했고, 물리의 매운 맛에 물려버리기도 했다. 며칠 전 복습한 1주차 문제를 제외한 시험 범위의 모든 과제를 복습했다. 이쯤 되면 기계적으로 풀기도 하지만, 여전히 턱턱 막히는 부분이 있는 걸 보면 아직 멀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어떤 문제는 단순히 계산이 복잡해서 꼬이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문제의 경우 아이디어가 참 중요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물리에 영 재능이 없는 나는 복습을 해도 푸는 방법에서 막히는 문제가 몇 개 있는데, 그런 문제는 문제 푸는 루틴을 적어보았다. 그랬더니 확실히 기억에 더 남는 것 같다. 그러니까, 문제를 풀면서 내가 다음에 어떤 일을 해야할 지 연결이 된다.
10월 25일
시험 전날이다. 미적분 시험은 오픈북으로 시행한다고 해서 부담이 좀 덜하길래, 매우 부담스러운 물리를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어제 풀면서 체크한 문제를 또 풀고, 또 거기서 체크한 문제를 다시 풀고. 미신이지만, 나는 한 과목의 시험을 치기 위해서 최소한 한 장의 노트를 써야 이제 시험을 쳐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노트를 얼마나 썼는지가 확연히 보이는 뜯어쓰는 노트를 좋아하는데, 이번 시험 기간동안 노트 두 권을 다 뜯어 썼다. 속지는 빈 채 뒷판만 남아있는 노트의 한 귀퉁이에 다 쓴 날짜를 쓰는 것은 일종의 기념 행사이다.
총결산 종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각 과목의 성취도를 저렇게 열 칸을 색칠해가며 체크하곤 했다. 빨간색으로 x표가 된 날은 정말 열심히 했다고 내가 인정한 날이고, 노란색 또는 파란색은 그럭저럭 했지만 빨간색의 자격은 없는 날, 회색은 그냥 날린 날이다. 다음 번 시험에도 그렇고, 시험 기간이 아닌 날도 빨간색으로 채워나가는 게 좋겠지? 일반 화학 시험이 취소되는 바람에 도비는 3일이나 더 일찍 자유로워졌다. 오랜만의 게으름 피울 권리가 좋다.
저번 시험이 너무 빡세서 그런지 (한 학기 분량을 한 달에 걸쳐 몰아서 쳤다. 진짜 자퇴하고 싶었다.) 시험을 두 개밖에 안 치니 그냥 퀴즈 두 개 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재앙이 닥쳐왔는데, 어떤 수학과 조교님의 실수로 이번 미적분 시험 결과가 성적 반영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메일이 왔다.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꼬일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이번에는 미적분 공부를 나름 열심히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공부만은 정직하니 빛을 발할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시험 기간이라는 핑계로 미뤄둔 적분과 화학을 공부하러 가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