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책
날씨가 너무 좋아 밖에서 걷고 싶었다. 아파트 8층까지 올라오는 은목서 향기에 매혹되어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카페에서 <가을 아침>이 흘러나온다.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가을 아침 내겐 정말 커다란 행복이야. <가을 아침>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기로 마음먹으며 걸어간다.
나는 비행기를 보는 것이 좋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늘 위 작은 점처럼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는 것도 좋고 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을 만큼 육중한 몸체가 땅에 발을 딛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나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공군교육사령부의 비행기 모형을 보러 간다. 이곳은 나의 비밀 장소다. 여기는 워낙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누운 채로 비행기 모형을 올려다 보기도 한다. 나는 차가운 돌바닥이 더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누워있곤 한다.
철조망 너머로 진짜 비행기인 것같은 몸체가 보인다. 정문 위에는 맹렬한 기세의 독수리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있다. 그 뒤에는 '젊음을 조국과 하늘에' 라는 구호가 새겨져 있다. 문득 사관학교, 특히 공군에 품어왔던 마음이 꿈틀거린다. 나는 이루고 싶은 게 너무 많다. 군인이 되고 싶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가 되어 알 수 없는 뇌를 좀 더 들여다보고 싶기도 하고, 소아과 의사가 되어 아픈 아이들과 함께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면 내가 가장 바라왔던 길이었던 공대생의 진로는 내 마음에 없다. 어떤 불씨를 지필 수도 없고 그저 감내하며 살아가는 짐이자 굴레가 되었다. 나의 길을 사랑할 수 없어 슬프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 된 듯한 공간에 이질적이게도 양파들이 나뒹굴며 싹을 틔우는 모습은 내게 어떤 현대 미술 작품보다 예술적인 조형물로 보인다.
길을 잃어 어쩔 수 없이 차도의 바리케이드를 넘어간다. 거미줄을 가로질러 간 듯하다. 그러나 경사가 급해 신경쓸 수 없다. 내가 아는 곳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옷에 엉겨붙은 거미줄과 벌레의 사체가 눈에 띈다. 거미줄을 끊은 죄다. 눈을 애써 돌린 채로 집에 와서 벌레를 떼어내는 것으로 오늘의 산책을 마무리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