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
옛날부터 사람들은 집을 재산 이상으로 생각해왔다. 집주인의 삶이 그대로 묻어있는 삶의 동반자, 집. 그래서인지 집은 무생물인데도 때때로 이름이 붙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아빠의 시골집도 그렇다. 아빠가 태어나고 자란, 60년도 더 된 이 집은 수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나는 이 집에 들어오면, 50년 전의 모습을 상상하며 '어떻게 이렇게 작은 집에서 오남매가 복작거리면서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빠진다.
2014년, 할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고 난 후, 아빠의 정성으로 이 집은 다시 한 번 큰 변화를 겪었다. 원래 집 입구에 큰 감나무가 있어 '감나무집'이라고 불렸던 이 집은 감나무를 옮기는 바람에 더 이상 감나무집이 아니게 되었지만, 아빠는 집주인과 터줏대감이 감나무가 떠난 이 집의 빈 자리가 허전하게만 느껴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집을 가꿨다.
위의 왼쪽은 집 들어서는 길, 위의 오른쪽은 집 마루에서 본 모습, 아래는 정원 모습을 파노라마로 한 컷에 담은 모습이다. 할아버지 계실 적 마당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래서 집 바로 앞에는 수도와 호스가 있어서 나는 여름이면 호스를 연결해서 사촌들과 물장난을 쳤고, 낚시를 다녀온 아빠와 작은 아빠, 할아버지는 물을 틀어놓고 생선을 손질했다. 할아버지가 키우시는 몇몇 화분들도 놓여 있었다. 투박한 시골집의 정취가 가득한 집에 아빠는 잔디를 깔고, 징검다리처럼 돌을 놓고, 벽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었다. 그러나 집은 허물지 않고 화장실을 좀 넓히고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정도의 변화만 주었는데, 덕분에 본연의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한 채 새로운 것과 어울려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는 모두들 시골집에서 가장 멋있다고 말하는 장소이다. 이 벽돌 하나하나를 아빠 혼자 쌓아 올렸다. 처음 심었을 때는 40cm에 불과했던 측백나무들은 크리마스 트리처럼 크고 아름답게 자랐다. 이곳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 즐거운 이야기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이 두 발로 밟아본 곳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것처럼, 아빠의 손이 안 닿은 곳이 없는 이 정원과 집은 구석구석 이야기를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아빠가 이 집을 꾸밀 때 마삭줄에 푹 빠졌던만큼, 곳곳에는 다양한 마삭줄이 있다. 특히 화덕의 한 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오색마삭은 꽃처럼 다양한 색을 자랑하고, 대문가에서 자라는 황금마삭도 아름답다. 이웃집이 넘어오는 마삭줄을 여러 번 뿌리째 뽑아버려서 아빠가 많이 속상해했는데, 이제는 마삭줄이 제대로 자리를 잡은 듯하다.
이 집의 뒷편은 원래 대나무숲이었다. 그런데 대나무가 워낙 수세가 좋아 사람이 빈 집을 금방 폐허로 만들어버려서 아빠는 혼자서 대나무를 다 베고 콘크리트 블럭으로 담을 쌓았다. 그리고는 담을 따라 동백나무를 심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동백나무 사이의 틈이 메워지고, 겨울마다 붉은 동백꽃이 만개하게 되면 '감나무집'이라는 별칭을 잃어버린 우리 집은 '동백나무집' 혹은 '동백꽃집'이라고 불리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가져본다.
집이 사람을 담은 존재가 된 이유는 결국 사람이 집에 쏟은 정성과 시간, 그리고 애정 때문이다.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푸른 초원 위의 집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뙤악볕 아래에서도 마당의 잡초를 뽑고, 집 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집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 안에서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보내야 집이 사물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의 주말, 아빠의 삶이 스며든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은 마음 편히 쉬었다.







